주일설교

제목아가서 강해 (4장 1-2)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드러납니까?2018-09-15 23: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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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광야를 가로질러 가마를 타고 그의 신부에게 찾아온 신랑 솔로몬 왕은 이제 그의 신부와 함께 사랑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사랑하는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 신랑 솔로몬왕은 신부의 눈부터 시작하여 신부의 아름다운 가슴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감성을 친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영적 신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품이 어떠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고 있습니다.

 

우선 신랑 솔로몬왕이 그의 신부를 바라볼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다라고 찬사를 표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외적 미모가 탁월하게 아름다운 보다는 그의 신부를 너무나 진정으로 사랑하다보니 신랑의 눈에 신부의 모든 모습은 그저 아름답게 보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신랑이신 예수님의 눈에 비친 모든 영적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은 있는 그대로 그에게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이유는 신부 각자가 어떤 외모와 어떤 환경에서 자라 그리스도의 신부로 전향하였든 간에 그리스도는 우리 각각의 신부를 위하여 그의 고귀한 피를 흘려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외모로 인하여 품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전신(영혼과 육체) 그리스도의 보혈이 덥혀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아름다와지게 것으로 여겨야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릇 진정한 아름다움 혹은 선한 것의 근본 기원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시편 27 42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아름다움 대해서 고백합니다. 아름다운 혹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아름답게 혹은 선하게 만드셨고 만드신 후에 외치시기를, ‘보기에 좋았더라.’ 혹은 아름다웠더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주만물의 아름다움은 기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아름다움 혹은 선함은 사람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형벌로 인하여 왜곡되고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만물가운데 악한 혹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만물이 비뚤어지고 악한 것이 들어오긴 했으나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만물을 새롭게 혹은 아름답게 하는 능력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21:5).

 

만물을 새롭고 아름답게 하셨고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의 내면에서 부터 아름다움 혹은 선함이 비로소 흘러나오는데 그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눈일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그의 신부의 아름다움의 번째 소재로 그녀의 눈을 지목하면서 그녀의 눈이 비둘기 같이 아름답다라고 묘사했습니다.

 

눈을 비둘기 묘사한 것은 아마도 비둘기의 순수함, 부드러움 그리고 평화로움을 염두에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그의 영적 신랑이신 예수님의 임재를 강하게 의식하면서 산다면 아마도 그리스도의 부드러움과 평화로움이 그의 내면에서 부터 흘러나와 그의 눈에 투영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드럽고 순수하며 평화로운 시선은 주변에게 놀라운 아름다운 성품으로 드러나게 것입니다.

 

더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쌍의 비둘기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편이 먼저 죽고나면 다시는 다른 짝을 찾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비둘기가 그만큼 충성심이 있음을 반영하는 합니다. 만약 이것을 신자에게 대입한다면 신자는 그의 시선을 오직 그의 영적 신랑되신 예수님에게만 고정해서 살아갈 존재인 것을 시사합니다.